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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필름  - 마야 데렌, 멀리서 찍는 기록용 영상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영상을 담았다.

모던댄스는 퍼포먼스 아트와 굉장히 유사해져서 경계가 애매해 지기 시작한다. 

퍼포먼스 아트는 굉장히 다양하게 많이 나타난다.

Ex)백남준, 오노요코 등등

컨템포러리 댄스 - 폴 테일러, 개념미술로서의 춤, 전위적인 작품을 많이 만듬.

점점 춤이라고 할 수 없는 춤들이 등장한다. 렉처퍼포먼스

강연같은 공연? 개념무용이라는 것들이 등장한다.

Ex) 제롬벨- 베로니크 두아노

발레리나는 무대속에서 철저히 인형같은 존재인데 이 무대에서는 발레리나가 등장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제롬벨은 나중에 사람을 없애 버리고 옷만 남겨서 옷이 춤을 추게 한다. 점점 해체 시켜 간다. 포스트 모더니즘 안에서 두가지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 지는 것들을 보인다.

디자인과 춤 : 특수한 조명과 옷을 디자인한다. (긴치마가 시각적인 역할을 한다.)

테드손 - 춤의 역사

얼윈 니콜라이(기계와 추상) - 이마고, 크루서블

순수 추상의 형태를 보여준다.

머스 커닝엄(컴퓨터 테크놀로지를 활용) - 바이패드

영화를 위한 안무를 만든다.

빌티 존스, 머스 커닝엄 - 고스트캐칭

국내의 안무가 <김효진> - 마담 프리덤

<미디어아트> - 과학기술 발전에 의해 생겨난 예술장르로 새로운 매체 기술을 사용함. = 뉴미디어 아트, 매체예술

시대에 따라 가변적

1960년 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과 함께 탈장르적 개념이 대두

미디어 아트는 양이 굉장히 방대해서 다양한 미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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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 예술과 디자인 : 움직임의 디자인, 그리고 신체

    무용예술과 조형예술의 공통점 : 

    시각예술이면서 동시에 시간예술이다. 

    미술에서 움직임이라는 것을 인지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미술은 항상 정지 된 것이라고 인지 되어왔다. 뒤샹의 샘도 혁신적이었지만 그것 또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움직이는 예술은 키네틱 아트라는 것으로부터 왔다.

    알렉산더 칼더라는 사람이 키네틱아트의 선구자이다.

    이사람은 물체의 운동과 물체가 움직이면서 변하는 빛의 변화 등을 예술 작품으로 담았다.

    이사람은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고 이걸 움직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게 되었다.

    키네틱아트는 많은 영역이 있고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제일 유명하다.

    화가들이 신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 자화상

    화가들은 얼굴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하나의 표상으로 인지하였다. 그래서 화가들은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자신의 화풍으로 그렸다.

    예술가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이 되거나 신체를 자신의 작품에 쓰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의식을 반영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자화상을 보면 그사람이 추구하는 바와 이상을 알 수 있다.

    발레는 모든 춤의 기초이다. 발레는 어떤 이상적인 미를 표현하고 있다. 발레는 원래 신체의 조형적인 부분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발레 동작은 끊어서 봐도 아름다워야하고 물 흐르듯이 이어져야한다. 발레는 보여주는 춤이기 때문에 몸매를 드러내야한다. 그래서 이상적인 신체적인 조건이 있다. 

    발레는 아름답고 조형적이다. 균형미,대칭미, 등등 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춤을 담는 무용사진 작가가 있다 - 로이스 그린필드

    춤은 한번 추면 사라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춤을 기록 할 수 없어서 사진과 그림으로만 남아있다. 로이스는 순간을 역동적이고 도형적으로 잘 포착을 했다. 이게 배포되고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은 사진의 형태로 보여진다. 

    무용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시각예술의 공통점에서 이루어 진다. 

    인체의 미학을 담은 디자인도 있다.

    춤의악보, 춤의 인포그래픽 - 무보법, 라바노테이션

    무용수의 관점에서 기록된 악보 같은 것들이다, 

    무용과 미술의 협업 - 무용과 미술은 시각성이라는 공통점에서 협업을 하기도 한다. (마사커닝햄과 로버트라우센버그)

    두가지의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서 정지되거나 무대위에서 공연되는 춤이 아닌 두가지가 같은 공간에서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한 시도 였다. 그러나 단순히 두가지를 묶어놓은 꼴라보레이션에 가깝기는 하다.

     안무를 만드는 과정에서 디자인 적인 요소를 발견하는 과정

    -  안무 창작의 모형을 보면 관찰을 하고 시각디자인을 활용해서 반응을 이끈다. 

    - 무용과 함께 디자인의 영역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음.

    - 신체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이 우리가 종이위에보는 그림처럼 카메라 위에 보이는 화면처럼 더 이상적이고 더 조형적으로 보이는 각도가 있다고 한다.(배치)

    -선, 형태, 구성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고려한다. 무대라는 도화지 위에 사람이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네거티브 스페이스,프레이즈,추상기하학양식,무대안무연출

    네거티브 스페이스 : 잔상 같은 것.

    프레이즈 : gif 같은 느낌, 작은 동작들이 하나하나 모여서전체작품을 구성한다.

    춤에는 디자인 요소가 전부 반영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플로어 무브먼트 - 디자인의 점과 같은 느낌

    스탠딩 무브먼트 - 디자인의 선과 같은 느낌

    이러한 동작들을 모아놓고 보니까 추상적인 형태가 보인다.

    바우하우스의 <오스카 슐레머>는 이러한 요소들을 가지고 형태춤이라는 자신만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

    단순히 건축과 관련된 공간이나 제품 시각예술 등 만을 다룬것이 아니라 음악이나 춤 연극 공연예술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래서 바우하우스는 무대미술도 건축의 하나라고 보았다. 바우하우스는 이렇게 총체적인 시각으로 미술만 본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서 보는 시도를 많이 하였다.

    가장 중요한 <3부작발레> 추상무용작품을 남겼다. 기초적인 미술지식들을 활용하면서 모든 분야들을 다 다룬다. 이사람이 왜 이런걸 다 다룰까 하는 의문은 작품을 보면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은 나중에 무대, 영상 들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실제로 슐레먼은 이 작품을 만들 때 예술과 기계의 통합을 담았다. 그 당시에 기계적인 생산이 많아지면서 기계에 대한 찬양이 많았었다. 그래서 슐레먼은 인간을 완벽한 기계에 형태라고 생각했고 인체를 기계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 것 이다. 

    무용의상 같은 것들도 의상으로 인해 안무가 빛나듯이 춤을 더 부각 시킬 수 있는 기능들이 있다. 의상 디자인 공간 디자인 모두 공연,무용의 하나로써 인지하고 만들었다.

    표현주의와 기능주의 의 대립을 보여준다. 오스카 슐레먼은 인간과 공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했다. 신체의운동을 통해서 몸을 이용하는 이런 것들을 중요한 이념으로 삼았다. 춤이라고 하는 것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사람이 공간에서 어떻게 배치되어있는 지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공간,막대,판 무용 

    앞에 미술적인 이름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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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젝트 개요

      • 식당 대기손님 관리용 앱
      • 실제 친구 식당에서 사용 중

      개발 기간 : 약 2주 개발 인원 : 1명

      개발 툴 : Android Studio 언어 : Java 백엔드 : FireBase

      주요 기능

      1. 대기표 발급 (태블릿)
        • 고객은 핸드폰 번호, 총 인원, 아동인원 등을 입력 후 번호표를 발급받습니다.
        • 현재 대기인원 수는 실시간으로 갱신되어 화면에 표시됩니다.
        • 대기고객이 호출되면 알람음이 재생됩니다.
      2. 관리자 화면
        • 대기중인 고객의 리스트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 호출 버튼을 누르면 고객에게 호출문자가 전송됩니다.
        • 새로운 대기고객이 추가되면 TTS음성메세지가 재생됩니다.
        • 잘 못 입력된 고객은 호출하지 않고 삭제할 수 있습니다.
      3. CRM 화면
        • 웨이팅한 모든 고객들의 리스트를 조회.(삭제가능)
        • 월 별 대기고객 추이 그래프 조회
        • 시간대 별 대기고객 추이 그래프 조회
        • 요일 별 대기고객 추이 그래프 조회

      특징

      • 비동기 프로그래밍 (실시간 데이터 업데이트)
      • 실제로 사용되는 앱
      •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구현
      • Model과 View 분리하여 설계

      링크 github https://github.com/Haeseong5/izobonga-waiting-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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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시대가 끝나면 서양에서는 모더니티가 시작되는데 몯더니티에는 여러 단계가있다.

        인류의 역사에는 제일 긴 시대는 구석기시대였다. 그리고 호모사피엔스(인간)는 구석기시대부터 있었다.

        서구,서양 중심으로 보는 역사 이지만 지역마다 이런 시대들이 다를 수 있어서 유럽중심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중국,아프리카,인도네시아,남미 등등 대륙마다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전부 기원전 시대이다.

        Homo sapiens 

        homosapienssapiens/homo neanderthalensis 

        두종류가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현재는 구분을 포기해서 네안데르탈인은 더이상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라고 본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여러 homo들이 있는데 우리는 homosapiens 라고 하고 또 다른 homo가 옛날까지 있었는데 우리보다 일찍 없어졌다.그 homo는 homo neanderthalensis. 기원전 15만년 전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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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페스

          이산

          손에 장갑을 껴야 된다 안그러면 잡아감

          지하드

          사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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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팀북투(2014)

            모리타니에서 촬영하였고 말리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말리에서 촬영할 수 없었다.(너무 위험해서)

            팀북투 (tombouctou) - 도시가 거의없는 사막지역, 사하라 산맥. 식민지 시대에 인위적인 국경들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서 왔다갔다 할 수 있었다. 알카에다 같은 단체들이 이동할 수도 있다. 팀북투 주변은 사헬지역이다.

            뚜아렉(touareg)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데 이사람들이 쓰는말은 (tamasheq)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아프리카 북부 마그랩과 흑인들이 사는 아프리카는 아프리크 누아르 라고 한다.

            팀북투의 문제는 중세시대 때 아주 문화적인 도시였는데 예전에 이슬람교를 공부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문서의 문화가 있었다. 이슬람교 성인들의 무덤도 많이 있었다. 점점 사막화가 되면서 사하라사막이 커졌다. 더 이상 말리의 중요한 지역이 아니고 그냥 조용한 지역이 됬다. 서양에서는 팀북투에 대한 전설이 많았다. 어디있는지 몰라서 서양의 탐험자들이 17세기 부터 아프리카에 가서 이 전설의 도시를 여러번 찾았다.

            도시의 유적 같은 것들도 많이 없어서 실제로 가보니 실망하였다.

            그러나 팀북투에는 아직도 이슬람교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들이 많이 남아있다.

            점점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젊은 사람들이 많이 is 나 알카에다로 전직 하였다.

            그 뒤 팀북투로 가서 사람들을 강제로 통치하면서 샤리아 등의 법률로 사람들을 식민지배하였다. 강제로 베일 착용, 축구경기금지, 노래듣기 금지.

            나중에 프랑스와 말리 군대가 많이 몰아냈다.

            팀북투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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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7일 05시23분 ·  집필활동

              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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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을 만드는 시대부터 역사라고 칭한다.(청동기시대)

                옛날에는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구분했냐면 문자같은 것이 있는 것부터 역사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문제점이 뭐냐면 골족같은 민족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발전이 잘된 민족이었는데도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아서 역사가 없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년전부터 기준을 바꿔서 역사라는 것은 청동기가 시작될 때부터 역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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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역사>

                  1. 프랑스의 역사에는 프랑스 학생이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사건들이 있다.
                  2. 그 중 제일 유명한 사건들을 이 슬라이드에 그림으로 표현했다.
                  3. 역사적인 왕들과 사건들을 다 알아야한다.
                  4. 이런 인물들을 통해서 프랑스사람들이 국민으로써 공동 역사와 과거를 구성시키는 것이다.

                  중세시대는 서로마제국의 멸망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매우중요!) 중세시대는 1453년에 종말으로 본다. 프랑스 대혁명 :1789년 800년 카를로스 대제의 통치의 시초(황제의 시작) 1914년 부터 1차세계대전 4년간. 1939년 2차세계대전. 1962년 프랑스식민지제국의 탈식민지화 끝(더이상 프랑스 식민지 x)

                  프랑스는 중세시대가 끝날 때 한국에서 조선시대 초기. 한국에서는 문화적인 혁명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유교 철학의 부흥시대. (16세기)

                  18세기 초부터 한국에서는 중산층이 등장하는 시대이다. 역시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18 19세기는 바로 부르주아 세기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시대 때 프랑스는 프랑스 식민지제국의 극치로 볼 수있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1945년 부터 전쟁 때문에 파괴된 나라를 재개발하기 위해서 영광의 30년이라는 시대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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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부르 - 퐁피두 현대미술관>

                    고전적인 오스마니안 식 건물 사이에 현대적인 건물이 생김.

                    원래는 퐁피두 센터였다.(1970년대 프랑스 대통령이름)

                    동네이름이 보부르이다. 1971년부터 건설시작해서 1977년에 완공 되었다. 1977년 건물은 렌조피아노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던 유명한 건물이다. 렌조피아노의 생각은 원래 건물 안에 있는 여러가지 배관들은 건물 안에 있으면 공간이 많이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파이프들을 외부에 설치해서 안에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처음에 파리 사람들은 아직 완공안된듯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파리의 상징적인 건물들 중에 하나이다. 


                    <르 마레> - 불어로 늪이라는 뜻.

                    퐁피두센터 바로 뒤에 있는 동네. 원래 물이 많았던 늪같은 동네였다. 귀족들은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서 이 동네를 재개발하여 늪들을 다 없애 버리고 멋있는 건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 가면 16 17세기 양식의 건물들도 많고 아직도 오스만 재개발이 거의 없는 동네여서 파리에서 많이 없어진 중세시대건물들을 볼 수 있다. 이 동네에서는 카페,레스토랑 등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 동네에 가면, 파리의 역사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주아노가 제일 좋아하는 박물관 중에 하나이다. 유명한 피카소 박물관도 있고, 건물자체는 17세기 귀족의 큰 집이다. 조금 더 가면 앙리 4세가 개발한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보쥬광장”이 있다.

                    르 마레의 특징 2가지

                      오랫동안 귀족들이 이 동네에서 살았다가 17세기 말부터 좌안지구 세느강 건너 바로 뒤쪽에 집을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에 와서는 생제르망이라는 동네 중심으로 살기 시작하여 이동네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귀족보다는 중산층사람들이 살기 시작 했다가 점점 하류층들이 살았다. 20세기부터는 이동네에서 다른 동네서 살기 힘든 “유태인”들이 모여서 살기 시작했다. “동성애자”의 동네이기도 하다. 게이클럽들이 많다.

                    <몽마르뜨> - 파리주변의 조그마한 언덕 위 마을

                    19세기 파리 도심에서 살 수 없었던 예술가들이 이 동네에서 살기도 하고 활동을 많이 했다. 그것 때문에 예술가들이 많이 다니는 카바레,카페,술집 등이 많다. 보통 부르주아 중산층 사람들이 많이 놀러 왔다. 이런 카페에서는 예술가,귀족,창녀들이 다같이 놀던 분위기의 동네였다. 현재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관광객들을 위한 그림들을 팔고 19세기말 르누아르 드가 피카소 등등 그 시대의 화가들의 그림을 파는 곳들이 많다. 1871년에 꼬뮌이라는 반란 혁명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독교 사람들이 혁명이 끝났을 때 하느님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이 성당을 지었다. 

                    <물랑루즈>

                    몽마르뜨의 성당 밑에 있는 카바레.1890년도에 만듦.

                    카바레는 ? 술집같은 분위기. 밥도먹고술도마시면서 공연도 볼  수 있고 춤도 출 수 있는 곳.

                    캉캉 춤: 프랑스어로 시끄럽다. 1830년대 젊은 사람들이 만든 춤. 자유롭게 살기 위해 만든 춤.

                    1860년대 영국에서 온 사람이 캉캉을 런던으로 가져가서 공연으로 만들었는데 아주 인기가 많았다.

                    젊은 여자들이 치마를 위로 올리면서 다리를 올려주는 춤을 추었다. 보수적인 기독교사회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춤이었다. 여러나라에서는 금지 되기도 하였다. 이 유행은 다시 프랑스로 갔다.

                    캉캉은 몽마르뜨에 있는 카바레에서 자주 추었다. 부르주아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오페라를 하는 극장들만 있었는데 이런 카바레에서는 자유롭게 쇼를 할 수 있었다.

                    이 동네는 20세기부터 빈곤층의 동네여서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땅값도 싸고 카바레 같은 곳은 외국인들을 위한 곳이 되었고 이동네는 이태원 방식으로 음침한 동네 였다.  1990년대 말부터 재개발 되어서 현재에는 다시 유행을 타는 동네가 되었다. 

                    <파리 남쪽(좌안지구)>

                    에펠탑. 324m의 탑.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진 철강탑. 이 탑의 설계사는 Eiffel 기술사였다. 이런 건물들은 19세기 말부터는 다른 자료들을 사용하기 시작함. 바로 철근 콘크리트. 20세기의 새로운 혁명적인 재료가 철근 콘크리트였다.

                    19세기 산업화 혁명과 시대를 상징하는건물은 에펠탑이다.이 건물은 박람회를 위해 만든 것인데 끝나면 철거하려고 했었는데 1930년 대 까지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 이기도 하였다. 시민들은 건물이 너무 커서 싫어했다.

                    <까르티에 라텡>(라틴어 동네)

                    이 동네는 12세기부터 소르본 대학교가 있었다. 이동네에는 대학교들이 많았는데 대학생들은 17,18세기 까지 라틴어를 많이 사용했다. 교과서나 강의를 진행할 때도 라틴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는 파리도심이 되기 전에 중세시대에는 큰 수도원이 있었다. 파리의 중요한 성인들이 여러명 있다. O,O,생제르망 3명. 이 교회와 수도원 때문에 생제르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도원은 소유지 같은 것들이 있었을 때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끔 특별한 권리가 있을 수 있었다. 이런 영토에서는 특별한 법이나 규정을 시행할 수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죄인들이 이 수도원 영토안에 들어가면 대피소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돈도 만들 수 있었던 권리, 생제르망 수도원은 권력이 많았던 특별한 수도원이어서 돈이 많았다. 프랑스 대혁명 때 이 수도원은 너무 기독교적이어서 일부는 철거했다. 교회 바로 앞에 있는 카페 두개가 있다. 둘 다 역사적인 카페인데 19세기말에 유행한 동네이다. 

                    몽마르뜨의 Gentrification. 20세기 초에는 예술가들에게 비싼동네가 되었다. 그래서 다른 동네로 이주했다. 

                    까르띠에 라뗑은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으나 현재에는 가장 비싼 동네중에 한 곳이 되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e) 철학자들이 토론을 자주 나누던 카페가있다.

                    장 폴 사르트르가 자주 가던 카페도 있다. 

                    그 시대의 젊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건물들의 지하실이다.(cave : 불어로 지하실) 이러한 지하실에서는 청춘이 모여서 춤도 추고 놀았다.

                    상제르맹은 cave 와 exsistemtialime의 상징이다.

                    <룩상부르 공원과 몽파르나스>

                    공원이 되기 전에는 프랑스 왕비의 궁이었다.

                    (마리 드 메디씨스 /꺄트힌 드 메디씨스 와 다름)

                    나중에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이 정원이 누구나 올 수 있는 공원이 되었다. 날씨 좋은날 사람들이 많이 놀러옴.

                    공원뒤에는 몽파르나스 동네가 있다. 몽파르나스에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차역이 있고, 예전에 1920년대 30년대에 유명한 동네였는데 이 동네에는 gentrification 이 되서 몽파르나스를 떠나서 카르티에 라땅하고 생제르멩 쪽으로 갔을 때 이 동네는 좀 낡아졌다. 1970년에 퐁피두 라는 대통령은 프랑스 현대화를 보여주기 위해서 큰 아파트와 탑을 만들었다. 고층 탑을 만들어서 파리에서는 가장 큰 탑이다. 지금은 다시 또 레노베이션 중이다. 이 탑은 1969년부터 만들어서 1973년 완료 되었다. 210미터.

                    <프랑소아 미테라유 국립 도서관 - 파리 리브 고슈 구역>

                    철도도 많고 철도 관련된 창고가 있었는데 큰 음식 상품을 위한 냉장고와 여러가지 공장들이 있었는데 2000년대 부터는 전체적인 동네를 재개발 해서 살기 좋아졌다. 파리 7 대학이라는 대학교도 있고 대학생들이 많은 동네이다.

                    옛날 국립도서관이 너무 오래되서 새로 지은 도서관. 

                    Dominique Perrault  라는 사람이 지었는데 디자인 적으로실패했다고 평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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